영화 <밀양>을 보며 다시 생각한 용서와 회개, 그리고 진정한 복음
얼마 전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어?”
짧은 질문이었지만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친구는 예수님을 믿지않는 친구였고,
우리 기독교에 대해 불신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응. 예수님 믿으면 천국에 가.”
라고 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구원의 문제를 떠나 질문의 의도가 훨씬 더 깊은 이야기를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간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친구의 질문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단순히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 안에는 이런 물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럼 아주 큰 죄를 지은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는 거야?”
친구는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아주 나쁜 일을 저질렀다며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기독교인에 대해,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와 구원애 대해
근본적이면서도 깊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말하는 '죄' 그것이 단순히 범법에 대한 내용인걸까요.
만약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분명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의 가족이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생각하다 보니 영화 <밀양>이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밀양>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영화 <밀양>에는 죄와 용서에 대한 매우 불편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피해자는 아직 용서하지 못했는데, 가해자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용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용서해야 그 사람이 용서받는 것 아닌가?”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리고 더 어려운 질문이 남습니다.
사람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까지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수 있는가?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교회안에서도 아직 죗성이 가득해서 온갖 죄를 짓는 자들을 많이 봤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아직 성화가 되지 않은 인간이기에
알고도 혹은 모르고도 짓는것이 '죄'입니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과거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를 용서받는 것과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받은 상처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했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까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이제 아무 문제도 없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죄의 용서와 죄가 가져온 결과는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 죄가 남긴 결과까지 인간의 힘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죄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말 그런 죄도 용서하실 수 있을까?
여기에서 복음의 놀라운 부분이 시작됩니다.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의로운 행동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로마서 3:23
그리고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구원은 내가 충분히 착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과거의 죄를 모두 갚았기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도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살인처럼 큰 죄를 지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대답은 그렇습니다.
진실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까?
아마도 우리는 죄의 크기에 따라 용서받을 자격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전에 노방전도 중에 천주교 신자이신 분이 저를 보고 '참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죄짓지 말고 살아요~' 라고 하며 지나가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타 종교의 사람들은 흔히 기독교의 교리를 비추어 봤을때
죄를 지어도 교회에 가서 회개하면 되니
늘 죄를 짓는 자들.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 죄는 어떤 것인지, 내가 생각하는 '죄'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누가 정한것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죄에 크기가 있을까요?
“저 정도 죄를 지었으면 용서받기 어렵지 않을까?”
“그 사람은 너무 큰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지?”
그런데 만약 구원이 인간의 의로움에 달려 있다면 누구도 자신 있게 천국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을 만큼 완벽하게 의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십자가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사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죄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십자가를 통해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 믿는다고 말하면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다면 죄를 마음껏 짓고 마지막에 예수님만 믿으면 되겠네.”
이러한 태도와 행동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정죄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회개와 연결됩니다.
회개는 단순히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실제적인 행동으로 반응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단지 마음속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삶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회개에는 돌이킴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죄는 어떻게 되는가?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그래도 과거에 저지른 죄는 있잖아.”
맞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회개는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며, 그 죄에서 돌이켜 새로운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까 이제 괜찮아.”
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기에 나는 내가 저지른 죄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바라보며 돌이키겠습니다.”
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서 <밀양>의 질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입니다.
가해자가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즉시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상처도 실제이고, 슬픔도 실제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까 너도 빨리 용서해야 해.”
라고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인간 사이의 화해는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간사이의 용서는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다만, 인간사이의 화해와 용서로 나와 하나님사이의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 안의 용서와 화해의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이 어떻든간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회복이 됩니다.
그리고 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죽인 일로 인해, 자녀를 잃었던 것 처럼
죄는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피해자는
공의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집중해야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자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는 한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다시 살아갈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낙원을 약속하십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구원은 정말 사람의 과거와 공로에 달려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옆의 강도도 예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제 친구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가는 거야?”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질문에 단순히
“맞아.”
라고만 대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안에는 너무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천국이라는 장소를 얻기 위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있는 내가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으며,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동시에 두 가지를 말합니다.
“너의 죄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러나 그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
진정한 복음은 값싼 용서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어쩌면 <밀양>을 보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음은
“죄를 지어도 괜찮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피해자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
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돌이킴이 있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울 수 있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때로 우리에게 너무 불편합니다.
내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복음은 나 자신에게도 불편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큰 죄를 바라보면서 분노하지만, 정작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밀양>을 통해 용서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누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
사실 복음의 출발점에는 “자격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은혜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죄를 대충 넘어가는 곳이 아니라, 죄의 무게와 하나님의 사랑이 동시에 드러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가는 거야?”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답은 이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 하나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켜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가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놀랍습니다.
내가 감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가 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은혜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용서받았기에 돌이키게 하고,
은혜를 입었기에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밀양>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본 진정한 복음이 아닐까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복음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그래서 결국, 죄로인한 사망이 아닌,
예수그리그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생명의 길로 가는 것.
그래서, 복음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십자가의 승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