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왜 술과 담배를 하지 말라고 할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돼.”
“담배도 피우면 안 돼.”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성경에는 포도주가 등장하는데 정말 술 자체가 죄일까?
성경에는 담배가 나오지도 않는데 왜 교회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할까?
실제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술마시는 사람을 많이 봤다. 담배피는 사람도 많이 봤다.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청소년과 청년들도 여러 환경에서 술과 담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기보다
성경은 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술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절제’입니다
성경에는 포도주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술이라는 물질 자체를 무조건 금지한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술에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 말씀은 단순히 술 취하지마라고 했으니 술을 먹지 마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술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의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에 취하는 대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라고 권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술이라는 물질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삶에 있습니다.
잠언에서도 술이 사람을 미혹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 잠언 20:1
이 말씀을 통해서도 성경이 술로 인해 판단력을 잃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배는 왜 피우지 말라고 할까요?
담배는 성경 시대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직접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서 담배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원칙을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우리의 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는 우리의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담배가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더라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이나 반복적인 의존에서 벗어나 몸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하면 나쁜 신앙인일까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단순히 “나쁜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가르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장로, 집사직분이지만 교회 밖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건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술과 담배의 문제에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를 먼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요즘 청소년과 청년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술과 담배를 접하게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호기심으로 시작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잊기 위해 찾기도 합니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만 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제는 단순히 “무조건 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는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절제를 언급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성경이 말하는 절제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순간적인 욕구나 주변의 분위기에 끌려가기보다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삶과 연결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과 청년들에게도 단순히
“교회 다니니까 술과 담배를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 선택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가?”
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입니다.
술과 담배보다 더 중요한 질문
사실 이 문제를 조금 더 넓게 생각해보면 술과 담배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스마트폰, 게임, 인터넷, 쇼핑 등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절제는 특정한 물건 하나를 금지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해도 될까, 안 될까?”라는 질문만이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유익한가?”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얽매이게 하는가?”
“이 선택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
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죄보다 이해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청소년 청년 사역을 하다보면,
담배냄새를 풍기며 예배에 들어오는 친구들,
술냄새를 풍기며 철야에 오는 친구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술이나 담배를 이미 하고 있는 사람에게 단순히 “그건 죄니까 당장 끊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랜 습관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방법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서는 정죄하기보다 그 사람이 더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해하고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술과 담배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도 결국 절제와 자기관리, 몸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무조건적인 금지나 정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돌아보고 더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가 하는 여러 선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조용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