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으로 바라보는 교회 안의 갈등과 화해
교회에 다니다 보면 마음이 참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가면 모두 친절해 보이기때문에 처음에는 잘 못 느낍니다.
그러나 1년, 2년, 3년....
세월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생기곤 합니다.
믿음 안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섬기던 성도와 어느 순간 관계가 불편해지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오해였는데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벽이 생기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사회생활에서도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더 어려운 것은 교회라는 공간입니다.
세상에서라면 그냥 잘라버리고,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라는 공간에서는 계속 마주쳐야 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며 공동체 안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왔을때 더 어렵게 느껴지는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와의 불화가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갈등이 전혀 없는 공동체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1. 먼저 내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잘못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먼저 그렇게 했는데..."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런 생각으로 잠을 이룰수 없을정도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말씀을 대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 사람이 먼저 잘못했는데..'
라는 생각은 인간의 가장 처음 된 죗성이라는 것을요.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 마태복음 7:5
이 말씀은 상대방의 잘못을 무조건 덮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갈등을 해결하기 전에 나 역시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말이나 행동 가운데 잘못된 부분은 없었는지 하나님 앞에서 먼저 돌아보라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내 생각이 다 맞는것이 아닐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 지식, 생활 등이 내 방식대로 익숙하다보니,
일반적으로 그것이 옳다, 맞다, 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단은 그 생각을 타고 나 스스로를 속이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대방의 잘못을 찾는 것보다 내 마음속에 쌓인 분노와 서운함을 하나님께 먼저 내려놓는 것이 화해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2.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당사자와 먼저 대화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흔히 세상속에서 그렇게 살아왔기때문에, 나와 친한 누군가한테 털어놓고 상담하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공감받음으로 위로를 얻게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처음의 사실보다 나의 감정이 더해지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도 어느 한쪽의 입장만 듣고 판단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잘못이 있을 때 먼저 개인적으로 권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 마태복음 18:15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을 모으기보다 먼저 당사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지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어요?"
보다는
"그때 제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까요?"
라고 이야기한다면 대화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감정이 가라앉은 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처를 받은 직후에는 마음이 격해질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서 바로 상대방을 찾아가면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감정적인 말이 먼저 나올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 야고보서 1:19
갈등이 생겼을 때 정말 필요한 말씀입니다.
빨리 말하기보다 먼저 듣고, 쉽게 화내지 않는 것.
상대방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들어보면 내가 알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갈등이 대화 한 번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내가 받은 상처가 즉시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4.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관계의 회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 어려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상식, 혹은 습득된 지식에 의해 생각을 타고 들어온 사단의 속임수 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누가 맞는가?"
를 명확하게 따지기보다는 내 확신과 생각을 먼저 내려놔야합니다.
혹은, 사실을 따져보면 분명히 잘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하는 것이 항상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로마서 12:18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관계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대화를 거부할 수도 있고,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화목을 위해 노력하라는 말씀입니다.
화해는 반드시 상대방의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는 그 일로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움과 보복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먼저일 수 있습니다.
5.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갈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하지만 용서라는 말 때문에 오히려 상처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도니까 그냥 용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믿는 사람이 왜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나?"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의 상처까지 부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용서는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를 가르치셨지만, 동시에 진실한 관계와 사랑도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용서는 상대방이 한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을 하나님께 맡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용서하면서도 거리를 두어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가까워지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용서를 했지만 상대가 꺼려할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화해를 했어도
예전처럼 친밀한 관계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과 관계의 회복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6. 다른 성도들에게 갈등의 내용을 퍼뜨리지 않는 것도 사랑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말의 확산입니다.
한 사람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두 사람, 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공동체 전체의 갈등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내에서도 어떤 이들은 갈등이 있었던 일들이나, 개인적인 일들을 아무렇지 않게 퍼뜨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말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교훈을 줍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 잠언 17:9
여기서 '덮는다'는 것은 잘못을 숨기거나 부당한 일을 방치하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불필요하게 다른 사람에게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판단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상처를 아무에게나 이야기하기보다는 기도로 하나님께 먼저 가져가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신뢰할 수 있는 목회자나 적절한 지도자에게 지혜롭게 상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7.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패배는 아닙니다
갈등이 생기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항상 내가 먼저 해야 하지?"
"상대방이 잘못했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면 내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용기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과 형제와의 관계를 연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 마태복음 5:23-24
예배와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람과의 화해의 문제는 예배와 연관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예배의 회복을 위해 사람과 화해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는 아무렇게나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먼저 다가간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해를 위한 첫걸음을 내가 먼저 내딛을 수는 있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겁니다.
8.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사과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했는데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을 지나치게 책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든 관계의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 시편 37:5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사과를 받아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만큼 평화를 선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교회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성도라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교회도 결국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인 공동체입니다.
오히려 죄인들이 더 많이 모이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오해가 생기고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생기지 않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생겼을 때 복음의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똑같이 상처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기도하고,
판단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이해하려고 하고,
미워하고 싶을 때 하나님께 그 마음을 맡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씀 안에서 배워가는 사랑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요한복음 13:34
사실 이 말씀은 사이가 좋은 사람끼리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맞지 않을 때,
서운함이 생겼을 때,
상처를 받았을 때,
그래도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더 어려운 말씀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다면 너무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내 마음을 돌아보고,
가능하다면 조용히 대화해 보세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화해를 위해 노력한 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보세요.
모든 관계를 내가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할지는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화해는 결국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됨을 기억하세요.
나를 위해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오늘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주고,
상처를 더 큰 상처로 만들지 않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씩 닮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로마서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