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회개는 무엇이 달랐을까?
저는 예전에 베드로와 가룟유다는 다른차원의 죄를 지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직접 배신하고 넘겨주었으니 두 사람의 죄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죄는 회개할 수 있는 죄였지만, 가룟 유다의 죄는 너무 큰 죄였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죄에 대해 조금씩 묵상하게 되고, 또 회개가 무엇인지 생각할수록 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크고 작음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서 이것은 큰 죄이고, 이것은 작은 죄라고 쉽게 구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죄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는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죄와 회개에 대해 묵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베드로와 가룟 유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가룟 유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한 일을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다시 예수님께 돌아갔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반면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와 절망 가운데 무너졌고,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전에 생을 마쳤습니다.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요?
어쩌면 그 차이는 죄의 크기보다 죄를 깨달은 후 어디를 바라보았는가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자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결국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났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기록합니다.
베드로에게도 깊은 죄책감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예수님을 자신이 부인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가룟 유다 역시 자신이 한 일을 깨달았습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유다는 예수님께서 정죄받으신 것을 보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자신의 죄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도 후회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도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유다는 자신의 죄와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바라보면서 그 죄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보기 전에 자신의 삶을 끝내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죄를 본 후에도 예수님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유다는 자신의 죄와 절망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베드로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가운데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실패를 이유로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시 베드로를 찾아오셨고, 베드로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얼마나 놀라운 장면인지 모릅니다.
베드로의 실패가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유다를 찾아가지 않으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정확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다를 찾아가지 않으신 것이 유다를 용서하지 않으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만나셨던 것처럼 유다를 만날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베드로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유다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다시 예수님을 만날 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 후에도 살아 있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유다는 그 전에 자신의 절망 속에서 삶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조금만 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면,
조금만 더 주님의 은혜를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성경은 그 가정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다의 마지막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절망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회개는 나의 죄에서 예수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
베드로와 유다의 이야기를 보면 후회와 회개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후회는
“내가 잘못했다.”
라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돌아갑니다.”
라고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이 저지른 일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고, 예수님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실패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우리도 살면서 베드로처럼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어려운 순간에는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내 죄를 바라보는 것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생각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그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에게는 실패 이후에도 예수님을 다시 만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오늘이 있습니다.
아직 주님께 돌아갈 수 있는 오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에게서 도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죄 때문에 주님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묵상하다 보니 한 가지 질문이 제 삶에도 찾아옵니다.
나는 잘못했을 때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내 죄만 바라보다 절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죄보다 크신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런데 이 질문은 꼭 죄에 대해서만 묻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죄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관계 때문에 힘들고,
때로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걱정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도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문제를 계속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가 나보다 커져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문제가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어디를 바라보는지가 중요합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는 두려움만 바라보고 있는가?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나는 그 사람의 행동만 바라보고 있는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는 부족한 것만 바라보고 있는가?
앞날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불확실한 미래만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문제 자체가 당장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방향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마무리 묵상
오늘 내 앞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내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죄를 지었다면 주님께 돌아가고,
실패했다면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두려움이 있다면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길까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볼 방향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주님,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세요.
사람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 사람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세요.
나의 부족함 때문에 낙심할 때 나 자신만 바라보지 않게 해주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한 문장을 글의 마지막 핵심 문장으로 넣으면 정말 좋아.
“내 삶의 방향은 문제가 어디에 있느냐보다,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문제를 만나겠지만,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정해야 할 삶의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