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말씀을 담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돌게 하셨을까?

봄앤소소 2026. 9. 30. 09:35

목차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를 돌게 하셨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걸어갔을 때,
    우리는 한 가지 궁금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걷게 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다면
    조금 더 빠르고 편한 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성경을 보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는 더 가까운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까운 길인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변하여 애굽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광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운 길을 아셨지만 다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오래 걸릴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렇게 힘든 길을 걷게 하실까?”

    이스라엘 백성도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그런 놀라운 일을 경험했으니 이제 곧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아름다운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편안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았고, 물도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광야는 믿음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에서 모세는 광야에서 보낸 시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이유를 이어서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시험하셔서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알게 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광야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광야는 단순히 목적지까지 가는 데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매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를 먹어야 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셔야 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움직여야 했습니다.

    내일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서 머물지, 언제 떠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힘으로 살아가는 백성이 아니라 나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백성이다.”

    하지만 광야의 40년은 단순한 믿음 훈련만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키워 주시기 위해 정해 놓으신 훈련 기간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읍과 강한 사람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했고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까지 드러냈습니다.

    민수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40년의 광야 생활에는 훈련이라는 의미와 함께 불신앙에 대한 심판이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있었던 것인가?

    스스로 질문해봅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돌아가게 하셨다고 해서
    그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서 원래부터 정해 놓으신 ‘40년짜리 신앙훈련 코스’였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불신앙이 그들의 광야 생활을 더욱 길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처음부터 쉬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을까?



    그렇다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면 되지 않았을까?”

    출애굽기 13장 17절을 보면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길로 가면 전쟁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전쟁을 보고 마음을 바꾸어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단순히 가장 짧은 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길의 길이만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상태까지 보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 사람이 그곳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를 보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이스라엘을 가나안이라는 장소에 데려다 놓는 것만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광야에서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 선명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만나를 통해 하루하루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
    목마를 때 물을 주시는 하나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갔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난 후 광야의 시간을 뒤돌아볼 때에 진정한 감사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도 광야의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광야와 같은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지금 광야의 시간에 있습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바로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 같은데 오히려 길이 더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쉽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스라엘의 광야를 생각해 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광야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구름기둥이 앞에서 인도했고,
    불기둥이 밤을 밝혔으며,
    만나가 날마다 내려왔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없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하는 장소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광야가 아니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인식하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게게 광야의 시간이 필요한것인지도 모릅니다.

     

    빨리 가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기도의 응답도 빨리 받고 싶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빨랐으면 좋겠고,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도 빨리 도착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백성의 광야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것을 보여줍니다.

    짧은 길이 반드시 좋은 길은 아니며, 긴 길이 반드시 잘못된 길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길을 피하게 하셨고,
    광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으며,
    동시에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길이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무조건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한 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준비의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기억해야 할 것!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8장을 묵상하다 보면 광야의 시간이 단순히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그들의 마음을 드러내셨고, 또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광야도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지고 있을까?”

    라는 질문만 하기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을 통해 내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실까?”

    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빠른 길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돌아가는 길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광야의 시간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려두신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하셨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함께 묵상해 볼 말씀

     

    신명기 8장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오늘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길의 길이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걷고 계시는지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광야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야를 걷는 동안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광야를 지나고 계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가장 많이 느끼실 수 있는 시간입니다.

     

    - 봄앤소소-